거리가 짧았다. 망할 놈의 팔라딘 새끼.
아스타리온은 공포와 짜증과 분노와 체념과 그밖의 많은 익숙한 것들을 느끼며 헐떡이는 두르벤텔을 바라봤다. 저놈의 팔라딘의 표정에는 절망과 죄책감이 가득했다.
내 친구라며, 친구라면 조금 더 생각을 했어야 할 거 아냐, 대체 왜 라샌더의 피를 폭풍언덕 예배소에 그냥 넘겨줬어, 내가 뱀파이어랑 싸워야 한다고 했잖아, 라고 고함지르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아냐, 내 잘못이야,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을 했어야 하는데 내가, 내가 조종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야 하는데, 라는 마음이 동시에 공존했다.
저놈새끼는 그러고 나서 또 우울해하겠지, 그리고 게일에게 가서 나는 실패한 팔라딘이니 뭐니 하겠지, 망할! 나는 여기서 죽는데.
하지만 아스타리온은 동시에 자신의 친구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고 있었다. 강타 쓸 때 주문 슬롯이 부족하다며 잘 쓰지도 않는 안개 걸음까지 써가며 달려와서 자신의 손을 잡으려 했는데 고작 1미터를 앞두고 저렇게 눈에 절망이 가득해선 헐떡이며 미안해, 라고 입모양으로 말하는 제 친구에게 그는...
뭘 느껴야 하지? 그는 무슨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몰랐다. 내 유일한 친구, 내가 몇백년 만에 만든 유일한 친구가 내 앞에서 미안하다고 계속 그러는데 거기다 대고 무슨 감정을 느껴야 하지?
그래서 아스타리온은 그 상황에 할 수 있는 유일한 답을 했다.
"지옥 가서 레뮤어 보면 나일 수도 있으니까 질질 끌지 말고 한방에 끝내줘, 자기."
그게 끝이었다.